스크랩

다시 해보는 우리들의 대차대조표 계산 - 양신규

LIMSEUNGSOO 2021. 3. 7. 01:21

hadream.com/xe/skyang/67991

 

우리는 만 열여덟 살, 그 어린 나이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인생을 건
선택을 해야 했다. 나보다 두살 어린 남동생은 열여섯에 그 선택을 해야 했다.
그녀의 조잡스런 문장력과 구성력에도 불구하고 공지영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하나, 내가 생각하지 못한 소중한 귀절, 나를 몇번이고 울린 그 귀절을
그녀가 생각해 냈기 때문이다. 당시에 우리앞에 던져있던 물음은 하나밖에
없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킬거냐 말거냐.
알리미 글을 읽은 후 사람에 대한 예의를 저버리지 못했던 너무나 많은 선배,
후배들의 삶과 죽음의 모습, j21에 고민을 올린 한 학생운동가의 모습들이 이
눈에 아른거려 바쁜 이곳 생활에 그냥 뭍힐 수가 없다. 사실은 환절기
기후까지 도와주지 않아 몸까지 좀 아프다. 그녀의 학교 생활, 사회 진출,
사회에 적응하며 반항하며 자신의 손익계산서를 돌아보며. . . 왜 그리도
십년전 나와 내 또래 동지들의 모습을 닮았느지, 아니 왜 그리도 서른일곱의 내
모습과 똑같은지.
80년대의 대학은 전쟁터였다. 전쟁의 명분은 인간에 대한 예의, 적은 인간성
말살 파시스트들, 그리고 우리들의 무기는 젊음과 동지들과의 우정밖에는
기댈것 없는 맨 몸뚱아리.
전쟁은 우리편이 이겼는데, 분명. 전두환과 노태우는 감옥에 집어 넣고,
직선제로 정권교체도 거의 달성했고, 남한은 정치 기적을 이루어 가고 있는데.
. . 멀지않아, 우리 세대가 죽기 전에 분명,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와 삶의 질이
세계를 리드하는 모습을 꼭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 . 우리는 승리와 영광의
세대인데. . .
왜 이 위대한 전쟁의 영웅들에게는 대접이 이 모양인가? 아니 그보다 먼저, 왜
영웅들은 본인이 영웅인지도 모르고 있을까? 무섬증에 소심했던 나보다
비교가 안되게 치열하고 철저했던 그 많은 영웅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하며
젊은 날의 꿈을 삭이고 있을까? 잔치가 끝나고 사람들은 지갑을 챙겨 일어나고
만 것일까?
오년 전, 정보기술 공부를 하겠다고 맘먹고, MIT의 입학원서를 쓸때 도와준
미국 친구가 있었다. 내 이력서를 보더니 왜 과외활동이 빈약하냐고 묻는다.
한게 있어야지. 가슴 쓸어 안고 괴로와 한 것도 과외활동이 되나? 그는 내
학생시절과 그후 청년과학기술자협의회 활동 얘기를 듣더니, 그걸 강조해서
쓰라고 했다. 내가 지원했던 모든 학교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다, 내 학점과
점수로는 상상도 못했었다. 친친이 나보다 오년 후, 미국에 공부하러
오겠다고 했을 때, 나는 똑같은 얘기를 했다. 학생운동과 사회운동 경력을
강조해서 쓰라고. 하바드와 MIT와 워튼과 카네기멜론 그리고 미시간은
우리들의 고민과 경험을 자산으로 처주는데. . .
그런데 나나 친친같이 불쌍하게도 늙어서 공부시작한 친구들이 세상에다 뭘
기여하지?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과학기술사 교수가 된 동기가 있다. 그가
보스턴에 왔을때 우린 이런 얘기를 했다. 미국의 대학생들은 정말 행복하다.
그들은 너무나 잘가르치는 교수들과 잘 짜여진 커리귤럼에다, 공부와 연구에
세상에 이럴수도 있나 싶은 좋은 환경. . . 도대체 우리들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가진 것은? 80년의 경험. 그게 뭔가? 세계사적
경험. 이십대에 나라를 뜯어 고치겠다고 나선 기개. 이런 바보같은 짓이 어디
있나. 그런데 거기서 우리들의 창조적 질문이 나온다. 미국 친구들을 도저히
던질수 없는 질문들이. 그는 미국에서 자기분야 박사학위논문 최우수상을
받고 토론토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청과기협을 할 때 동지 두 명을 이번 겨울에 실리콘 밸리에서 만났다. 열정과
깨끗한 두뇌의 소유자들, 전자공학과 계산통계학과를 나온 그들이
정보기술혁명의언저리에 늦게 라도 끼어 보려고 힘들게, 힘들게, 돌아가고
있었다. 남도의 동서 양쪽끝에서 자라 전자공학과 컴퓨터를 전공하겠다고
서울로 올라온 그 둘, 그들이 미국애들처럼 자신들만 돌보며 대학과 그 이후
십년을 보냈더라면 지금 무엇이 되어 있었을까? 그러나, 길게 보면,
전자공학과 컴퓨터 대신 마르크스를 읽고, 지식노동자운동론을 개발한답시고
보낸 이십대의 경험이 언젠가는 그들의 인생에 크게 기여 할 것이다. 그리
안되면 너무나. . . 억울하지 않은가?
우리들의 가슴속, 머리속에는 아직 세상 멏군데서 밖에 알아주지 않는 엄청난
무형자산이 있다. 젊음의 고민과 우정과 기개가 엉기고 결정이 된, 강하고
귀한 자산이 있다. 우리끼라도 먼저 이 무형자산을 알아주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자산을 모아, 우리 사회를 바꾸어서, 이 무형자산을 누구나
알아주도록 해야 할 것같다. 아무것도 안되더라도 가슴 부등켜안고 같은
고민에 몸부림쳤던 우리들의 공동체험에 기반한 우정이 있지 않은가. 개인적
성공이 결코 가져다 줄수 없는, 인간존중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함께. . .
계산 다시해보면, 우리들이 대차대조표는, 색깔이 바뀔 것이다. 제일 건강한
인생의 대차대조표로.